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의 시계탑(카리욘)의 종소리가 사람들의 시계였습니다. 16세기가 되어 태엽이 발명되자, 시계는 개인 소유의 물건이 됩니다. 시계 제작가가 시계 속에서 종소리를 나게 만들고, 시보의 역할을 하게 한 것으로 오르골은 탄생되었습니다.
세기가 되면 오르골은 시계와 분리되어, 그 당시 유일한 음악의 기록 재생장치로서의 위치를 확보합니다. 그 중심지가 스위스였습니다. 19 세기가 되어 오르골은 한층 더 정교도를 높입니다. 그러나 매우 고가품이었기 때문에 귀족 등, 부유층을 중심으로 보급되어, 일반 서민에게는 아직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실린더에 바늘과 같은 핀을 묻어, 그 핀이 빗살모양으로 줄선 금속을 튕겨 소리를 내는 실린더형태 타입이 전성기였습니다.
 
 
 
 
  루쥬사는 1886년에 스위스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인 산크로아에서 아버지가 시계 제작가였던 알버트·루쥬라는 사람으로 인해 설립되었습니다.
19 세기 후반, 오르골은 스위스의 총 수출액의 10%를 차지해 그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루쥬사는 당시의 기술을 현대에까지 전하고 있는 유일한 메이커입니다. 금속의 가공 기술로부터 상감기술에 이르기 까지 모든 공정을 숙련된 제작가가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당 점에서는 루쥬사의 제품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꼭 방문하여 감상해 주십시오.
 
     
 
  19세기 후반,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 실린더형태의 고급 오르골 대신, 디스크형태의 오르골이 탄생되었습니다. 디스크는 프레스 기계로 대량생산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디스크를 바꿈으로써 오르골 1대로 다양한 곡을 들을 수 있는 오르골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역이나 바 등에서는 소리가 큰 대형 오르골, 또 가정용으로서는 소형 오르골이 일반화되어 보급되었습니다.
 
     
 
  디스크 오르골의 탄생으로 더 인기를 얻었던 오르골이지만, 어떤 물건의 출현으로 순식간에 쇠퇴, 소멸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그것은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이었습니다. 축음기는 20 세기에 들어 레코드 회사가 대량으로 레코드를 판매하게 되자, 급속도로 일반 가정에 까지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많이 있었던 오르골 메이커는 그 자취를 감추고, 그 기술도 끊어져 버릴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으로 주둔 하고 있던 미군 사이에 그 부드러운 음색이 서서히 인기를 얻었고, 이에 따라 오르골 산업은 다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루쥬사외, 일본의 산쿄오(三協)가 「오르페우스」브랜드로 아름다운 음색의 고급 오르골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백만엔의 대형 실린더 오르골이나, 새의 실제 날개로 만드는 싱잉버드, 오르골을 넣고 조립한 회중 시계, 매년 컬렉터용으로 제작되는 크리스마스 벨 등, 어느 것을 보아도 모두 훌륭한 미술 공예품이며 귀중한 일품입니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오르페우스」